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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서

안개.

 서리가 내리는 절기인 상강을 지나고, 겨울의 시작이라는 입동도 지났는데. 새벽안개는 여전하다. 길 건너 아파트랑 주변의 논밭을 휘감아 구름바다를 이루지만, 아침 햇살 퍼지면 흔적도 없는 안개를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용호리 저수지에 피어나던 이른 아침의 물안개. 때로는 구름 기둥을 만들던 새벽안개.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 줄 알았다. 눈부신 봄날이나, 쨍쨍 뜨거운 여름에도 기도하며 노래하며, 가을이면 모두 모여 잔치하리라 기대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은 오늘, 내가 보낸 시간의 어딘가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 있다. 김천시 금감로 길의 어느 시간에 오늘의 삶이 숨어 있었을지? 내일의 나를 위한 오늘의 시간은 무엇이었는지? 안개 속의 인생이라지만 안개는 아주 잠깐, 그 새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사할 수도 있음을 이제라도 알았으니 감사할 일이려나?

 저수지 물안개 바라보며 복분자밭을 밟던 걸음이, 화장터 지나는 요양보호사의 출근으로 이어진 지 어느새 3년이다. 이제는 일상이 힘든 할머니 곁에서 나의 내일을 계획한다. 요양보호사의 일상에 안개가 덮이고,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간다면?

 한 단락을 마무리하며 다음 단락을 기대할 때가 혼돈일지? 설렘일지? 하여간 조금은 들쑥날쑥한 일상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옛 노트를 들추어 복습한다.

<마귀의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만 있고, 하나님의 달력에는 오늘만 있다.>

-20081001.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이라는 큼직한 제목 아래에 있는 글귀야. 2024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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