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라는 시몬 페레스. 폴란드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11살 되던 해, 아직은 꿈의 고국인 이스라엘로 들어갔다고 해. 20대 중반이었던 1948년 이스라엘 초대 수상인 다비드 벤구리온의 보좌관으로 출발하여 장관으로 10번, 총리로 3번. 마지막은 92세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나라를 위해 봉사한 사람.
오슬로 협정을 맺은 공로로 19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저자는 93세에 이 책의 집필을 끝내고. 2016년 9월 13일, 전 세계에서 온 수백 명의 기업가들을 만나서 이스라엘 기술 산업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고 해. 그리고 보름 후,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국무총리는 그 날을, 시몬 페리스가 없는 이스라엘의 첫 날이라 말했다는 것이야.
70년에 이르는 저자의 정치 여정을 정리하기가 힘들어 책속에서 그냥, 내 맘에 닿는 부분만 읽어 줄게. 국가와 민족을 향한 그의 마음과 삶에 공통분모를 찾기는 어렵지만, 힘든 시대를 지나 온 공감대는 있겠지? 어쨌거나 읽어주는 문장 속에서 삶의 지혜와 내일의 가능성을 약속하는 긍정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네.
**우리 가족은 몇 세대에 거쳐 비쉬네바 슈테틀에서 살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마을을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천 년간 거치게 될 여러 정거장 중 하나 정도로만 여겼다. 이스라엘 땅은 우리에게는 삶의 목적 그 자체였다. 1934년 내 고국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던 그 길은, 남아 있던 마을 사람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끌고 가는 길이 되었다.
우리가 떠나던 그 날, 기차역에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축복해주려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곳에서 할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항상 유대인으로 있겠다는 한 가지만 약속해 다오.>
**어머니의 삶에 독서보다 더 큰 즐거움은 거의 없었고. 그 옆에서 나는 책 읽는 소년으로, 책 읽는 남자로 자랐다.
**내가 이스라엘로 이민 왔을 때는 약 30 곳의 키부츠가 있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늘어났다. 키부츠는 무엇보다 농업중심의 정착지였고, 돌투성이 땅을 개간하고, 끔찍한 늪지대에서 물을 빼는 등, 등골 빠지게 고된 노동을 하였지만, 개척자들은 아무리 혹독한 환경이라도 야자수와 농작물을 심고, 과수원을 만들거나 가축을 키우며 전혀 새로운, 아름답고 풍족한 땅으로 만들었다.
**국가가 만들어지기 몇 년 전, 키부츠들은 각각 독특한 특징을 지녔지만, 모두 자주국가 건립이라는 이상을 품고 조직되었다.
**1938년. 나는 <벤쉐멘 청소년 학교>에 들어갔다. 우리의 사명은 단지 유대인의 역사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직접 역사를 빚는 것이었다. 향후 수백 만 명의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 왔을 때, 그들의 배를 채울 식량이 없으면 어떠한 안전도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우리는 더욱 철저히 준비했다. 땅이 우리의 노력에 굴복할 때까지.
**낮에는 밭에서 일하거나 교실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경비를 서야 했다. 이웃 마을의 아랍인들이 종종 우리를 향해 무기를 발사하고, 음식과 물자를 훔쳐 갔다.
**키부츠 알루못에 정착한 후, 나는 지도자로서 진정한 첫 경험이 될 일을 배정 받았다. 그건 바로 양떼를 이끄는 것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양떼. 하지만 이 둘은 두드러지게 비슷한 점이 있었다. 양치기가 양떼의 지휘권을 가졌다 하더라도 양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양몰이 기술이 숙달되기까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양들과의 사이에 공통된 언어와 이해를 찾고, 내 의도 표현과 양들과의 공감대가 필요했다.
**벤구리온은 불만과 실망으로 격분해서 당장이라도 떠나려는 순간에, 경험도 없고 지혜도 없는 풋내기 젊은 청년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회의에서 벌어진 큰 논쟁은 거의 포기했지만, 토론 자체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벤구리온은 경청하는 습관이 리더십의 열쇠 그 자체라는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벤구리온이 내게 건넨 종이에는 2 가지 목록이 있었다.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았다.
이건 현재 우리가 가진 무기들이고, 이건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무기들.
**나는 국가가 전쟁을 하게 되면 우리 모두가 위험에 빠질 것을 알았다. 벤구리온의 핵심적인 계획은 아직 탄생하지 않은 국가의 방어와 시오니스트의 꿈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다.
<항상 유대인으로 있어다오.>할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나는 이 도전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정치생활 중 첫 20년 동안에는 전쟁을 준비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았다. 서방은 우리에게 무기를 공급하지 않았지만, 소련은 우리의 멸망을 노리는 아랍 국가들에게 무기를 공급하는데 열심이었다. 우리 자신을 지킬 유일한 방법은, 금수 조치를 깨고 무기를 불법으로 구입하며 몰래 고국으로 밀수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특정 종류의 소총이 가진 사소한 결함부터 거대한 전함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무기를 운반하는데 필요한 연료량에 이르기까지 무기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 최고의 장비를 제시간에 운반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유추하는 일에 정통하게 되었다.
**2,000년의 망명 기간 동안 우리에게는 단 한 번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 그보다 더 절실한 꿈은 없었다. 테오도르 헤르츨이 <유대인 국가를 보호해 줄 집의 주춧돌을 쌓는> 시오니즘 운동을 시작한 지 50년이 갓 지난 후였다.
**단지 유엔 결의안만으로 유대인 국가를 보증할 수 없었다. 아랍 연맹은 결의안 채택을 막고, 유대인들을 강제로 내쫓으며, 이스라엘 국가가 지도에 그려지기도 전에 파괴하려고 했다. 결의안이 채택된 지 며칠 만에 유대인들은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5월 15일, 북쪽에서는 시리아가, 이집트군은 남쪽에서 침략했다. 요르단은 아랍 연합군을 예루살렘 내로 진격시켜 가장 규모가 큰 전투를 부추겼고, 그 과정에서 보급로를 끊었다.
**1948년 5월 전쟁을 시작할 당시 우리의 병력은 3만 5천명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1949년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오니스트 대의를 위해 무기를 들었다.
**벤구리온의 신뢰가 깊어지자 사람들은 물었다. <왜 그 청년을 믿지요?> 벤구리온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 청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청년은 다른 사람을 흉보지 않는다. 그 청년이 내 방문을 두드릴 때는 대부분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다.>
**1949년 6월 나는 뉴욕의 뉴스쿨 대학의 야간수업에 등록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은 나의 학습의 원천이다. 나는 국제 정세와 역사 지식이 필수인 세계, 경제학과 정치학이 지혜의 전제조건인 세계로 내던져졌다.
**영어를 모른다는 것은 세계의 대부분과 소통할 수 있는 공통언어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우리는 수상쩍고 불길해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탱크와 항공기. 모든 종류의 대포들을 샀고, 모두 부품으로 분해해서 밀반출해야 했다.
**스스로를 방어하려면 이스라엘은 항공기를 자체적으로 수리하고 만들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꿈이었다. 1952년 경 당시 이스라엘의 새 이민자 수용소에서는 22만 명 이상이 혹독하고 비위생적인 삶을 살았다. 50명 당 단 1개의 화장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옳다면 나는 기꺼이 홀로 서야만 했다. 더욱 강하고 번영하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이고도 현실적인 한계보다 더욱 높은 곳을 향해 시선을 두어야 했다.
**스스로가 작고 약하면 우선 이걸 물어보아야 한다. 어떤 종류의 투자를 키울 것인가?
여기서의 투자는 시간과 돈, 그리고 가장 중요할 지도 모르는 마음이다.
**우리의 노력을 접는 대신 나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아직까지 생각해 내지도 못했고, 존재하지도 않는 제 3의 대안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년 만에 항공기 사업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사업이 되었다. 1959년에 우리는 6일 전쟁으로 알려진 제3차 중동전쟁에서 국가를 방어하는데 사용했던 이스라엘의 첫 항공기를 만들었다.
**큰 꿈을 좇고 그 대가를 치르던가, 다른 사람에게 미움 받지 않고 무난하게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야망을 줄이거나 포기하거나.
**프랑스의 첫 여행에서는 통역사가 필요했지만, 그 후로 프랑스에 갈 때마다 불어를 배울 기회로 삼고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얼마 후 나는 통역사 없이 다녔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야기의 절반 밖에 몰랐다. 앞으로도 어쩌면 평생 절반 밖에 모를 것이다.
**성공은 내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실패는 내 의지를 견고하게 다져주었다.
**냉소주의는 모든 사람의 염원을 짓밟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며,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인간 본질의 일부분이며,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단 하나의 치명적인 위협이다.
**비관론자는 부정적이고, 짓밟힌 존재들에게 인생을 낭비한다.
**낙관주의는 전진의 전제 조건이다. 특히 힘든 시기에 영감을 주며. 우리의 웅대한 야심들을 마음속 금고에서 꺼내어 날개를 달아줄 수 있도록 격려한다.
**과거에 흘렸던 땀방울로 알게 된 지혜가 있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멀리 내다보는 안목과 전략도 필수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모든 과정의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아는 지식까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와 기술자 집단을 이끌어야 한다면, 그들이 맡은 일을 이해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젊은 물리학자들과 함께 밤이고 낮이고 원자와 핵에너지, 그리고 원자력 발전에 대해 공부했다.
*나는 한 나라를 설득하는 최고의 방법은,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가 아닌 그들의 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를 설명하는 길이라고 믿어 왔다.
**이스라엘이 국가가 탄생되기 전부터, 우리는 테러와 함께 자라야 했다.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희생자들을 묻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던 시기, 상실의 고통은 적대감을 불타오르게 했지만 한편으로 참담함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기도 했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 강인하고 용기 있는 병력과 기술을 보였다.
1976년 6월 27일에 납치된 비행기는 이스라엘에서 3,000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 착륙했지만. 그 곳까지 날아가 인질과 승무원을 구출해 낸 엔테베 작전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담대한 작정 중 하나로 알려졌으며 국방부는 이스라엘 방위군이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군대라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우리가 테러범에게 굴복한다면 이스라엘은 누더기처럼 보일 것이고,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이런 특별한 상황에서는 오직 행동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한 전문가가 할 수 없다고 결론지으면, 가서 다른 전문가를 구해라.
**어느 1명이라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초기의 유대인 개척자들에게 이곳은 신성한 장소였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 지역은 중동에서 석유가 매장되어 있지 않은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세워진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 이곳은 과학 기술을 통해 기적을 이뤄낸 곳이자 세계의 위대한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첨단과학 산업의 중추로 탈바꿈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부족함이 한때는 크나큰 도전이었지만, 반대로 엄청난 축복이기도 했다.
개척자들이 직면한 선택지는 냉혹했다. 성공하거나 굶어죽거나.
**더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씨앗을 개발하며 방울토마토가 나오고, 한번 사용한 물을 재활용하며, 물을 70%나 아낄 수 있는 점적관수 기술도 발명했다.
**우리는 근육보다 머리를 더 많이 의존했다. 우리 자신 속에 숨겨진 보물들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떠한 것보다 훨씬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는 수천 명의 과학자들을 훈련시키면서 미래를 만드는데 가장 강력한 도구인 지식을 경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방부에 컴퓨터가 들어왔을 때, 한 장군이 물었다. 대체 이걸로 뭘 할 수 있지요?
**나는 아직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았음을 인식하면서 분노를 한쪽으로 치웠다.
**옛날에 벤구리온은 이스라엘에서는 현실주의자가 되려면, 기적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안보를 외국 정부에 의존하면 결국 우리는 변해가는 세계 정치 흐름의 인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았다.
**최신 지식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일의 지식을 선점해야 한다.
변화의 핵심은 바로, 영토의 시대에서 과학의 시대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활동을 시작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이제, 공기보다 엷은 것, 철보다 강한 것, 깃털보다 가벼운 것을 만들 수 있는, 나노기술의 전도사이자 기술에 매료된 80대 노인이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시편 34편을 읊어 주셨다. 사람이 마음에 깊이 담아야 할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땅도 없고, 자유도 없이 2,000년간 망명생활을 했지만, 우리는 국경이 아니라 인간 사랑의 가치관으로 서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좋든 싫든 일단 적들을 만나지 않으면 평화를 향한 어떠한 진전도 이뤄낼 수가 없다.
**평화회담에 참가하는 것은 조종사가 되는 것과 같다. 보통 어머니들은 조종사의 안전을 걱정해 낮고 느리게 날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하지만 저공비행은 오히려 추락하기 십상이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선 높고 빠르게 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추락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떠한 문도 영원히 닫혀 있지는 않으며, 간절함을 갖고 노력하면 가장 무거운 문도 열 수 있다. 지도자라면 응당 그래야 하듯, 나는 절망에 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단순히 평화만이 아니라 번영도 필요했다.
**오슬로 협정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했다. 아랍연맹이 3개의 아니오‘ 로 알려진 카르툼 결의안에 가입했던 때가 있었다. 절대 이스라엘과는 평화협정을 맺지 말고, 절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말고, 절대 이스라엘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평등할 뿐 권리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서로 다를 권리를 평등하게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에 후진 기어는 없다.
**오슬로에서 나와 라빈, 아라파트가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 20년이 지났다.
**어느 나라도 더 이상, 세계를 친구와 적으로 나누면 안 된다. 우리의 적은 이제 빈곤과 기아, 테러와 같은 보편적인 것들이다.
**평화는 협상이 아니라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격차가 전혀 없어도 관계를 구축할 수 없지만 격차가 너무 커도 불가능하다. 현재는 세대 간의 격차가 국가 간의 격차보다 크다.
**과거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사람들은 마래로 나아가는데 주저할 것이 분명하다.
**전 세계의 청년들에게 부탁하는 4가지.
=미래의 비전은 현재의 계획이 투영되어야 한다는 것, 사람은 믿음의 힘으로 그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내일의 기회를 위해 오늘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은 없다는 것, 성공하려면 실패의 아픔도 감수해야한다는 것.
여기까지.
**이스라엘 건국과 번영,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꿈과 열정이 가득한, 저자의 평생의 삶을 읽으며, 나는 작게 자르고 잘라 개인의 삶으로 끌어오고 싶었거든. 누군가에게는 작은 꿈이 내게는 엄청 클 수 있잖아. 어쨌거나 그냥, 덮어두고 싶지 않은 책이야.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싶네. 201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