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단을 >
<감사로 단을 쌓으리>
종일 방에 콕~ 있다가 해 질 녘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두부 두 모 할머니랑.
내가 태어났을 땐 일본 사람들 세상이었어. 학교 갈 즈음에 해방이라고 난리를 치더니만, 얼마 안 있어 전쟁이 터졌지. 6.25 전쟁이야. 피난이라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가 했고.
힘든 시절이라지만 어린 게 뭘 아나? 부엌으로, 들로 산으로 엄마 꽁무니만 따라다녔지, 너나없이 가난했으니 그저 그런가 하고 살았던 것이고. 산골짝에서 보는 게 있나? 듣는 게 있나? 그래도 엄마랑 살 때는 울 일이라고는 없었다. 살림살이야 늘 궁색했고, 더러 굶기는 했어도 엄마가 있으니 다~아~ 괜찮았지. 스무 살도 안 되어 시집이라고 가서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어. 그리고 10년 만에 엄마를 만나러 갔지. 그간에는 왜 못 갔느냐? 글씨를 몰라 버스를 탈 수 없었어. 10년이나 지난 즈음에 두부 두 모를 보고 아주 맘대로 다녔지. 버스 앞 유리에 두부 두 모 <‘문무’>를 붙은 게 친정으로 가는 버스였거든. 엄마를 보고 싶을 때마다 갔지. 원도 한도 없이 다녔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야.
문무. 글씨 윗부분의 자음 두 개를 두부 두 모로 인식하고 버스를 탔다는 할머니랑 할머니의 엄마를 생각하면 온 세상이 따뜻하다.
벽 모서리 군데군데 금이 가고, 안방의 지붕 끝자락도 아슬아슬한 집. 밖에서나 안에서나 남이 보면 퇴락한 초가이지만 주인장 할머니는 언제라도 환한 얼굴이었다.
감사하지. 세상 감사하지. 집 있겄다, 양석 있겄다. 뭐가 불만이고. 이제 저세상 갈 일만 남았다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구십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지팡이에 기대어 먼 산 바라보며 미소 짓던 할머니. 짧은 가을 해보다 더 짧은 듯, 지나온 한 평생을 단 한 마디, 감사로 마무리하셨다. 지금은 저세상의 엄마랑 함께 계시려니 생각한다. 두부 두 모 이야기도 하면서.
두부 두 모, 감사 할머니처럼. 나도 지나온 삶일랑 감사 보자기로 폭- 싸서 두고. 남은 걸음걸음에도 감사로 꼭꼭 찍어가기를 기도하면서. 202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