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윤종석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저자인 팀 켈러는 <뉴스위크>에서 ‘21세기의 C.S 루이스’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탁월한 변증가이자, 영향력 있는 기독교 사역자.
**들어가는 말에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와 두 아들의 비유. 흔히 탕자의 비유로 불리지만.
-한 아들만이 이야기의 초점은 아니라고 강조.
-흔히 탕자로 번역되는 문구의 형용사 prodigal(프러디걸)은
-‘제멋대로 군다.’는 뜻이 아니라 ‘무모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프다.’
-하나도 남김없이 쓴다는 의미.
-비유 속의 둘째 아들만이 아니라 아버지를 수식하는 말로도 어울린다는 것.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하나님은 앞뒤 재지 않고 아낌없이 다 내주시는 분.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자녀인 우리에게 그야말로 탕부이시다.
-하나님의 무모한 은혜 = 우리의 가장 큰 소망.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 이 책의 주제.
1. 나는 왜 예수 앞에 나오는가? = 오늘날도 두 부류가 예수님 주위를 맴돈다는 것이야.
*첫째 부류 =세리와 죄인들. 비유 속의 둘째 아들.
-성경의 도덕법도 준수하지 않았고.
-종교적 유대인이 따르던 정결 의식의 규율도 지키지 않음.
-둘째 아들처럼 바람직한 사회와 가정의 전통 윤리를 버리고 집을 나가. 허랑방탕했다.
*두 번째 부류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비유 속의 맏아들
-자라면서 배운 전통 윤리를 고수했다. 성경 공부. 순종하고. 예배. 꾸준한 기도.
*둘째 아들과 같은 부류가 예수님께 나아오니.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의 부류가 불만을 토했다. =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먹는다.
*이 이야기의 과녁은 제멋대로 사는 죄인들이 아니라 매사에 종교적인 사람들.
-부도덕한 외부인이라기보다 도덕적인 내부인이라는 것이야.
-동생의 자기중심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형의 도덕주의적 삶도 함께 질책한다는 것.
*소외된 동생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만나면 가까운 사람이 되지만. 형 부류를 향해.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하셨다.
*우리가 동생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면 우리 교회는 생각보다 더 형들의 세상이라는 것.
2. 우리도 잃어버린 두 아들처럼 질주한다. = 나는 맏아들인가, 둘째 아들인가.
*아버지 사후에만 이루어지는 유산을 지금 달라는 둘째 아들.
-아버지는 그냥,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다. 제멋대로인 아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돼지와 같은 신세가 되어. 스스로 뉘우쳐.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돌아온 아들.
-돌아온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잔치를 베풀어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키는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덮지 못할 악은 없다.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
*형은 종들에게서. 아버지가 돌아온 동생의 신분을 회복해 주었다는 말을 듣고 격노한다.
*문밖에서 아버지를 거부한다. 아버지가 들어가자고 타일러도.
-나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따지는 맏아들.
-‘아버지 들어 보세요.’도 아닌, 보소서. 하며 따지네.
3. 스스로 하나님 노릇한다면, 충성했어도 죄. = 죄는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것 그 이상.
*도덕적 순응의 길과 자아 발견의 길이라는 두 가지 인생관에 색깔을 입힌 렌즈이자
-세계관을 형성하는 틀이라 하네.
*둘 다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길이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길.
-형.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 & 동생과 관습과 인습을 초월하려는 개인주의.
*예수님의 비유에 담긴 메시지는 양쪽 다 틀렸다는 것.
*방법은 다르나 마음은 같았다는 것이야.
-하나는 못됐고. 하나는 착했지만. 둘 다 아버지로부터의 유산 상속이 목표라는 것이지.
-하나는 규율을 어기고라도 내 몫을. 하나는 모든 규율을 열심히 지키면서 내 몫을 요구.
-하나님께 순종해 착한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이유로 그분에게 요구하는 것. No
*스스로 자신의 구주와 주인이 되는 길 두 가지.
-자기 기준대로 사는 것. 모든 도덕법을 지키며 극도로 착하게 사는 것
*둘 다 틀렸으나 둘 다 사랑받았다.
-아버지는 둘 다 소중히 여겨 사랑의 잔치 속으로 불러들인다. 이야기는 다르게 끝난다.
-둘째 아들은 바른 관계가 회복되지만. 맏아들은 잔치 자리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둘째 아들은 몸도 마음도 아버지를 떠났지만. 맏아들은 몸은 아버지랑 함께 있었는데.
4. 두려움에 기초한 맹종. 불순종만큼 위험하다는 것이지. 그래서 맏아들도 잃어버린 존재.
-화가 난 형.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형. 동생을 용서할 수 없다.
-어쩌면 형에게는 자신의 자아상을 떠받치기 위해 비난의 대상인 동생이 필요했는지도.
-윤리 규범을 엄수하고,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에서 전통적인 책임을 다하지만.
-기쁨이 없이 노예처럼 일하는 고역이 될 수 있음은 두려움에 기초한 때문이라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도를 따르는 것과는, 다른. 형들의 선행은 결국 개인의 욕심.
-종교적인 형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세속적인 형들은 덕스럽고, 너그러운 존재로 자처하려는 것.
*종교와 도덕의 의무는 종종 사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하지.
*저자가 보기에 교회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해, 비신자. 신자. 다시 돌아온 신자.
-형들에게 상처받고, 화가 나 있는 동생들도 많다고 하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 많다고 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면서 형의 모습에 가까운 사람들. 쉽게 형의 부류에 속할 수 있고.
-동생 부류의 사람이었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역시 동생의 죄에 빠질 위험성.
*어디서 답을 찾을 것인가?
5. 진정한 형이 날 찾으러 이 땅에 오셨다. = 형이 찾아야 하고. 형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나님의 주도적 사랑.
-저만치 오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로 아버지가 먼저 달려 나가 입을 맞춘다.
-분노와 원망을 품은 맏아들에게도 아버지가 먼저 나가서 잔치에 들어오라고 다독인다.
**또 하나, 우리의 회개는 개별적인 죄를 뉘우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깊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죄의 목록을 꺼내 항목별로 그 분께 사죄해야 한다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야.
-맏아들의 상태는 죄의 목록으로 접근해서는 충분히 다룰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지.
-내가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었다고 말했고. 아버지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형을 구원의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것은 나쁜 행실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선한 행실에 대한 교만이라는 것이야.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태도라는 것이지.
-그의 영적 문제는 자신이 옳다는 느낌을 끊임없이 떠받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흠잡아야 한다는 것이야.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주도적인 사랑과 복음에 합당한 더 깊은 회개.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교제한다고 트집을 잡았을 때.
*예수님이 들려주신 세 가지 비유.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잃어버린 은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앞의 두 비유는 잃어버린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부지런히 찾는다는 것. 그러나
-잃어버린 아들에게는 찾는 자가 없다는 것인데.
*동생은 자기의 것을 모두 날렸고. 남은 것은 모두 맏아들의 것이라고 했다.
-동생의 지위가 값없이 회복되었으나 용서에는 댓가 지불이 필요하다는 것.
*형으로든 동생으로든 우리는 아버지께 반항했고. 우리 대신 빚을 갚아 주신 예수님.
*온 우주의 주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형이나 동생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결핍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 해.
6. 이 세상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여정이라는 것이야.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둘째 아들과 같다. 유랑자로서 집을 그리워한다는 것이지.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고.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로 땅을 유리해야 했고.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가, 오랜 세월. 유랑했다.
-요셉을 비롯한 야곱 일가는 기근 때문에. 고국을 떠나 이집트로 가야 했다.
-다윗도 왕이 되기 전에 수배자가 되어 방랑 생활을 했다.
-이스라엘 전체가 느부갓네살 왕의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탕자의 비유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야.
*죄로 망가진 세상, 쉽지 않은 귀향길.
-집이란 우리가 그곳에 가야 할 때, 우리를 받아주어야만 하는 곳.
-돌아온 탕자를 받아줄 아버지가 없다면? 귀향은 의미 없다는 것이야.
-탕자의 귀향이 반드시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인간의 내면이 망가져있기 때문에 귀향이 어렵기도 하지만
-인간의 주변이 망가져 있어서 우리는 귀향이 어렵다고 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
*아버지의 임재로 부터 축출되어
-우리 대신 영적 소외라는 극한의 절망과 어둠 속에 내던져지신 예수님.
-우리를 진정한 집으로 맞아들이기 위해서라고 하시네.
*두 탕자의 이야기는 귀향의 잔치로 끝난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종말을 기록한 요한계시록도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끝난다.
*어린양은 우리를 용서하고. 집으로 데려가려고 세상 죄 때문에 희생되신 예수님.
7. 아버지 잔치는 이미 시작됐다, 들어가 누리라
=예수 복음은 지금, 여기서의 삶부터 바꾼다.
*매일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야.
-구원은 체험적이다. 연회장의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구원은 객관적이고, 법적이고,
-주관적이고 체험적이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라는 말처럼.
*타락한 물질세계도 구속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사회 구조를 개혁하여
-안전한 거리와 따뜻한 가정을 만드는 일을 한 문장 안에 함께 말할 수 있다는 것.
*복음의 내면화. 복음의 생활화.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고로
=나는 순종한다. 이것은 복음의 기본값.
=영속적 변화는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속속들이 배어들게 해야만 가능하다.
=복음으로 우리의 동기. 자아에 대한 이해. 정체성. 세계관들이 뜯어고쳐진다.
=복음은 삶의 출발점이고. 종착점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이 복음을 잘 알고. 또한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
*하나님은 우리의 결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값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제 우리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나를 값 주고 사신 그분의 것이라는 것.
*값싼 은혜의 위험성을 말하네.
= 값없는 은혜만 강조하여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는 별로 중시하지 않는 가르침.
*복음을 ‘받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 부류가 있다. 씨 뿌리는 비유,
-끈기와 인내가 없어 고난을 감당하지 못하여 변화된 삶을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
-계속 염려하며 물질주의적 삶을 고수하여 변화된 삶을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
-유일하게 변화된 삶을 결실하는 부류는 더 열심히 노력했거나 더 순종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들.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다. = 잔치는 본질상 공동체적이다.
*흔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그분을 더 잘 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비유에 나오는 형 부류의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교회를 멀리하려는 사람들,
-이 또한 방식만 다를 뿐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행동에 불과하다.
-다른 신자들의 공동체에 깊이 참여하지 않고는 당신은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일단의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단언하네.
여기까지. 20230521